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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상규 편] ⑫ 가치(value)

    『디자인사전』 (Michael Erlhoff, Design Dictionary, Birkhauser, 2008)의 뜻풀이에 따르면, 가치(value)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본적인 용도 또는 필요를 충족시킬 기능적 요구조건 이상의 것”을 말한다.


    글. 김상규

    발행일. 2015년 06월 24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상규 편] ⑫ 가치(value)

    『디자인사전』(Michael Erlhoff, Design Dictionary, Birkhauser, 2008)의 뜻풀이에 따르면, 가치(value)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기본적인 용도 또는 필요를 충족시킬 기능적 요구조건 이상의 것”을 말한다. 그 ‘이상의 것’이란 값어치(worth, price)에서 중요성, 도덕까지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디자인 영역에서 가치 개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디자인이 산업, 나아가 국가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가치를 더하는 역할로 존재 의미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60년대 한국 정부의 수출 정책에서 디자인은 동일한 상품이라도 조금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가치로 주목받았고 그 때문에 디자인은 곧 ‘포장’을 뜻했다. 대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오늘날에도 디자인은 큰 투자 없이 상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어떤 명분으로 오용되는 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면 정작 ‘가치’란 무엇인가? 여기서 디자인 자체의 가치는 논외로 한다.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설득하기 위한 ‘가치’와는 다른 이야기다. 디자인 활동이 가치를 생산해 내고 특정한 디자인이 상품의 가치를 더한다면 이때 가치는 어떤 측면으로 이해되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가치를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으로 나눈다면 경제의 측면의 가치는 정량적인 가치를 말한다. 즉, 화폐로 교환될 수 있다. 한편 정성적인 가치란 고급 브랜드가 갖고 있는 지위재의 가치가 해당된다. 또한, 환경친화적이라든가 공정무역과 같은 사회적 가치도 정성적인 가치에 포함된다. 지위재든 사회적 가치든 결국은 특정 브랜드와 상품을 선택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므로 화폐 교환의 의미를 피할 수가 없다.

    화폐를 교환의 의미에 집중해서 보면, 주고받는 것 즉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 때문에 이 구조가 디자인 과정을 설명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문제 해결이라든가 소비 욕망의 충족을 생산자-사용자의 교환 또는 거래로 보아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때, 교환 가치와 사용 가치가 함께 언급된다. 90년대 초에 볼프강 하우크(W. F. Haug)의 『상품미학비판』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교환관계의 작용방식 논리에 따라 디자인에 대한 비판, 즉 판매를 위한 교환가치에 매몰된 문제가 거론되었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익히 다룬 내용이고 그 이후로도 게오르그 짐멜, 가라타니 고진에 이르기까지 교환과 사용의 가치문제는 오랫동안 다양한 논의로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치의 논의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훨씬 더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형식론적 교환뿐 아니라 실재론적 교환의 문제까지 다루는 것이다. 단순히 등가의 것을 주고받는다면 교환이 활발히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욕망이 개입되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가치 이상의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작용한다.

    결국은 선택을 할 때 어떤 가치를 다른 가치들보다 우위에 놓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몇몇 기업의 광고에서 보듯이, 그 가치가 ‘디자인’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디자인을 특정한 가치의 항목으로 묶어두는 꼴이 된다. 즉, 기껏해야 색과 형태 정도의 시각적인 결과로 차별성을 주는 요인으로 보는 것이다.

    디자인이 정말로 가치를 더하는 효용을 갖고 있다면 이때 디자이너나 디자인 조직은 어떤 가치를 염두에 두는 것일까? 이 질문을 경제적인 측면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에서 경제학적 가치를 포함하여 세 가지 가치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사회학적 ‘가치들’인데,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옳고, 바람직하며, 타당한 것들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둘째, 경제학적 ‘가치들’로, 대상에 대한 욕망의 정도. 특히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얼마나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가에 의해 측정되는 욕망의 정도다. 마지막으로 언어학적 ‘가치들’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기인한 개념으로 ‘의미상의 차이를 낳는 최소한의 차이’로 규정될 수 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지점은 언어학적 가치인데 몇몇 언어학자들은 상징적 차이를 생산함으로써 소비를 유도한다는 주장을 펴서 디자인 활동에서 가치문제에 접근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도 소비자들이 차별성을 갖는 여러 다른 상품 중 왜 하필 특정한 것에 더 많은 돈을 쓰기로 결심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다른 상품보다 더 비싼데도 ‘하필’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동기가 정말로 ‘디자인’ 때문일까. 글머리에 언급한 『디자인 사전』에는 실제로 디자인이 가치 부가(value-adding)와 가치 조정(value-negotiating)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보편성을 갖는 강력한 가치 조정자는 ‘돈’이다. 모든 것과 결합하고 사물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돈이란 무엇인가』에서 “돈이 지불되지 않고 고정되는 순간 돈은 돈으로서의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돈이 정지된 상태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다시 운동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도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썼다.

    “마르크스가 보여준 것처럼, 고전 경제학자들이 각각의 상품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던 가치는 사실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일 하나의 개별 상품이 팔리거나 교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환 가치도 사용 가치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부동산을 생각하면 돈이든, 상품이든 그 자체가 주변 정황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하우스푸어를 생각하면 문제가 다소 복잡해진다.) 또 다른 예로, 이베이(e-bay) 사이트에서 점점 더 비싼 가격을 형성하는 바우하우스 가구들도 있다. 그것이 꼭 디자인이 잘 되었기 때문에 부가적인 가치가 형성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컬렉터들이 평가하는 여러 가치가 훨씬 더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로 바뀌게 되고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가치에 대해 둔감해지고 결국 경제학적 가치로만 남게 된다. 경제학적 접근에는 부작용이 수반되는데 사회적 의미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품이든 서비스든 사회적 관계를 물건의 소유주와 사람들 간에 맺어진 계약으로 단순화하면서 관계 자체를 사물처럼 취급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경제학자들이 ‘가치’라고 부르는 것은 만족의 예상치를 뜻하며,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은 ‘사회’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 주장을 펴 왔다고 설명한다. 한편, 짐멜은 사물 자체의 가치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에 주목한다. 여기서 ‘평가’가 가치의 중요한 항목이 된다. 예컨대, 귀금속이 실체로서 높이 평가되기보다는 장식과 미학적 환희 등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비로소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고 말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다른 사물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디자인에서 가치를 언급할 때, 특히 디자인 활동이 상품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언급할 때는 순수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두는데 현실은 사뭇 다르다. 디자인이 잘 되었을 때 그만한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고 소비자로부터 인정받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디자인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해서 판매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는 있지만, 정량적인 가치로 환원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타 디자이너가 개입하여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예도 있지만, 그것은 의사나 연예인 등 유명인을 동원하는 브랜딩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에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디자인 활동의 존재 의미, 즉 상품과 서비스에 잉여의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제 남은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이야기한 “상품이 지닌 내재적 가치” 즉, 노동일 것이다. 상품의 ‘운명을 건 도약’이라는 마르크스의 표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생산노동의 가치가 임금과 비용에 반영되듯, 디자인 노동의 가치도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가치는 평가를 동반하므로 디자인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따라서 디자인 비용이 책정되고 그것이 가격에 포함될 뿐이다. 그것이 교환의 가치 상승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김상규
    가구회사, 디자인회사, 미술관에서 디자이너와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번역했고 『의자의 재발견』, 『착한디자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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