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경균 편] 20. 도무송? 세네카?

    언어란 원래 흰색 옷처럼 쉽게 혼탁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 층이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나 줄임말은 거의 외래어 수준에 가까워 '솔까말', '열폭', '학식' 등은 이미 고전에 가깝다고 하겠다.


    글. 김경균

    발행일. 2016년 04월 20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김경균 편] 20. 도무송? 세네카?

    언어란 원래 흰색 옷처럼 쉽게 혼탁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 층이 흔히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나 줄임말은 거의 외래어 수준에 가까워 ‘솔까말’, ‘열폭’, ‘학식’ 등은 이미 고전에 가깝다고 하겠다. 특히 인쇄 관련 용어에는 지금도 여전히 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36년의 일제강점기를 통해 서양의 인쇄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비단 인쇄 분야만이 아니라 건축, 패션은 물론 일상생활 용어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본어와 영어 등의 혼재된 무국적어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나시티’는 소매가 없다는 일본어 ‘소데나시’와 티셔츠가 결합해 민소매 옷을 뜻한다. ‘깡통’은 캔과 통이 결합된 경우이고, 깡패는 갱스터와 패거리가 결합된 경우이다. 그 밖에도 기라성, 삐까번쩍 등 우리가 잘 모르고 사용하는 일상의 무국적어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나와바리, 시다바리 등은 오히려 멋있는 표현처럼 정착되는 분위기다.

    충무로나 을지로 인쇄 골목을 지나다 보면 간판에서 ‘도무송’이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 도무송도 알고 보면 참 허탈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도무송’은 톰슨의 일본식 발음인데 톰슨은 영국의 톰슨 프레스(Thomson Press)라는 인쇄기를 만든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영국에서 일본으로 들여온 ‘톰슨-브리티시 오토매틱 플레튼’이라는 평압 인쇄기를 이용해서 인쇄물에 칼 선을 넣어 모양을 따내는 가공을 하게 되면서 이런 가공 자체를 도무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것이다.

    이는 ‘호치키스’나 ‘바리깡’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치키스는 미국의 스테이플러 제작회사 이름으로 이를 처음 들여온 일본에서 호치키스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된 것이다. 바리깡은 프랑스의 헤어 클리퍼 제작 회사 이름으로 이를 처음 들여온 일본에서 바리깡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된 것이다. 도무송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모양 따내기 가공’이라고 하거나 영어로 ‘다이 컷팅(Die Cutting)’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여전히 ‘인쇄 나와바리’에서는 ‘도무송’이라고 해야 전문가로 통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 정착된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책등의 두께를 뜻하는 ‘세네카’라는 단어이다. 언뜻 로마 시대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와 무슨 연관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어의 ‘등’을 뜻하는 ‘세나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책등’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그 밖에도 오리꼬미, 시오리, 돈땡, 돈보 등 인쇄나 후가공과 관련된 용어에는 일본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어원이나 의미도 모르면서 사용되는 무국적어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광복은 벌써 70년이 지났지만 말이다.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심포지엄과 전시회 기획,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십인십색』,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다.

    Popular Series

    인기 시리즈

    New Series

    최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