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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의 저작권 이야기 #12 저작권이 ‘문화’인 이유

    저작권은 결국 문화의 산물이다 ― 김기태 교수가 알려주는 미디어 저작권 상식


    글. 김기태

    발행일. 2020년 06월 26일

    김기태의 저작권 이야기 #12 저작권이 ‘문화’인 이유

    인류 문명사에 있어 문자의 출현 이후 다양한 필사 매체가 등장하고 다양한 문명이 세계 곳곳에서 발흥했다. 그러는 동안 문자 복제술은 필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동양의 목판 인쇄술 및 금속활자 발명에 이어 서양의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 인쇄술이 상용화됨으로써 15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출판에 의한 대량 복제 시대가 열렸다. 그와 함께 저작물을 복제(copy)할 수 있는 권리(right)로서의 저작권이 생겨났다. 이처럼 출판과 저작권은 전통적으로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여 온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권리’란 ‘법에서 인정하는 힘’이다. 이러한 권리에는 크게 보아 공권(公權)과 사권(私權)이 있다. 저작권은 저작자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부여된 것이므로 ‘사권’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권은 재산권과 인격권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의 재산적·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재산권에는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물권(物權, 특정한 물건을 직접 지배하여 배타적 이익을 얻는 권리)과 채권(債權, 특정인이 다른 특정인에게 어떤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 대표적이며 양도나 상속이 가능하다. 반면에 인격권은 개인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개인의 일신에 전속하고 양도나 상속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저작권에는 재산권과 인격권이 포괄되어 있어서 그것을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만을 위한 게 아니다

    또한 저작권은 물권에서처럼 유체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무체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반적인 소유권은 영구적인 데 비하여 보호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서 저작권은 특허권 등과 함께 무체재산권 또는 지식재산권(知識財産權, Intellectual Property)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식재산권에 관한 문제를 담당하는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인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는 지식재산권을 가리켜 구체적으로 “문학·예술 및 과학 작품, 연출, 예술가의 공연·음반 및 방송, 발명, 과학적 발견, 공업디자인·등록상표·상호 등에 대한 보호 권리와 공업·과학·문학 또는 예술 분야의 지적(知的) 활동에서 발생하는 기타 모든 권리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다만, 특허권·실용신안권·디자인권·상표권 등의 산업재산권은 그것이 개인의 권리 보호뿐 아니라 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 특허청에 등록해야만 권리가 발생한다. 이와 달리 저작권은 문화의 향상 발전을 목적으로 하며 어떠한 절차나 요건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저작물의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성질이 다르다.

    아울러 저작권법은 단순히 저작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작권자와 이용자 사이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규율해 주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적 의미의 저작권법은 창조적 작업을 통해 직접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나 그것을 활용하여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커뮤니케이터들―예를 들면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 방송사, 음반회사, 영화사, 극단 등―만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과 함께 저작물 이용자의 권리와 의무까지도 함께 규정하고 규율해 주는, 문화 활동 전반에 걸쳐 기본이 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저작권법’이 필요하다

    일본이 1899년 저작권법을 제정한 배경에는 당시 서구 열강과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불평등 조약이 자리 잡고 있음은 지난 칼럼 「‘판권’ 아니고 ‘저작권’이 맞습니다」에서 살핀 바와 같다. 서구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가 영국, 독일 등과 약속했던 베른협약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저작권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좀더 직접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회 전반적인 수준은 ‘출판조례’나 ‘판권조례’ 정도가 걸맞은 것이었음에도 느닷없이 세계적인 수준의 저작권법을 보유하게 됨에 따라 현실과 법이 겉돌게 된 결과 사어(死語)인 판권이 계속해서 잔존하게 된 것이다.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하여 서구 학문을 간접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이때 유입된 일본 서적 등과 함께 ‘판권’이란 용어도 묻어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기면(刊記面)에 ‘판권 소유’ 또는 ‘판권 본사 소유’라고 적는 우리 출판계의 관행은 조속히 고쳐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애초에 그것을 도입했던 일본 저작권법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출판권자는 출판권을 표시하기 위하여 각 출판물에 저작권자의 검인을 첩부하여야 한다.”라는 우리 구 저작권법의 조항이 그대로 살아 현행 저작권법에서까지 ‘복제권자의 표지’ 의무로서 ‘복제권자의 검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근대적이고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출판권 관련 조항 전반에 걸쳐 잔존하고 있는 일본 저작권법의 영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출판 문화에 입각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제 출판은 단지 도서만을 의미하는 협소한 개념에서 전자적 정보를 서비스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보 사회 이전의 출판이란, 사상이나 감정 등을 정형화된 용기에 담아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했다. 이러한 행위를 둘러싼 경제적 관계를 통칭하여 ‘출판 산업’이라고 불러 왔다. 일반적으로는 도서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경제적 행위, 즉 생산·유통·소비를 둘러싼 경제적 메커니즘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출판 산업 개념으로는 더 이상 디지털화된 출판물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출판 산업의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는 반드시 아날로그 형태의 출판뿐 아니라 디지털화된 출판이 포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자연이 ‘문화’가 될 때, ‘저작권’은 태어난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종이가 귀해 책을 구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고 했을까. 그렇다 보니 ‘글 도둑’ 또한 도둑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고, 글을 도둑맞은 사람도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만 간직했을 뿐 훔쳐간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은 물론, 학문 연구자들의 학습과 연구 활동에 있어서도 그것의 윤리적인 책임과 더불어 주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은 ‘저작권’ 문제는 이제 모든 영역에 걸쳐 지나칠 수 없는 이슈가 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법률 제정에 앞장서고 있다.

    저작물을 창작하는 개인들도 자기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발휘해 이득을 얻으려 안간힘을 쓰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작권을 침해한 사람을 상대로 벌어지는 소송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이른바 ‘표절’ 의혹에 휘말린 유명인들이 여기저기서 야유 속에 시달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산과 들, 그리고 강은 애초에 자연(自然, nature)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서 우리 환경은 자연이 아닌 문화(文化, culture)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편리함을 도모하고자 자연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들인 셈이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문화유산과 유물 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고, 그중에서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창의적인 것들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국가나 개인의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는 글이나 그림, 음악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고전(古典, classic)으로서 우리 생활을 빛나게 해준다. 이렇게 ‘자연’이 ‘문화’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권리가 바로 ‘저작권’이다.

    이처럼 저작권은 어디까지나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곧 인간이 창조하고 면면히 계승하는 것이며, 그것의 주체는 또한 인간이다. 앞으로 기술은 점점 발전해 나갈 것이고, 저작물을 표현하는 매체의 양상 또한 날로 첨단화할 것이다. 전자책 등 첨단 매체 역시 인간이 창조한 문화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이것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인류 문화의 향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출판 분야의 새로운 첨단 매체에 대하여 단순히 기술만을 보호하려는 근시안적인 법과 제도를 고집한다면 또 다른 ‘책’의 유형이 등장했을 때 똑같은 문제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하여 수천 년 인류 문화에 봉사해 온 ‘책’의 본질을 헤아리는 미래지향적 법제도의 정착을 위한 연구와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저작권 연구자,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와 저작권의 상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출판 편집자로 일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문헌번호운영위원장,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저작권 및 연구 윤리에 관한 자문, 강의를 맡고 있다. 2018년 ‘생활 속의 표절과 저작권’이 K-MOOC 강좌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출판실무와 저작권』, 『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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