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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의 저작권 이야기 #1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어떻게 다를까?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법적 차이 ― 김기태 교수가 알려주는 미디어 저작권 상식


    글. 김기태

    발행일. 2020년 04월 10일

    김기태의 저작권 이야기 #1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어떻게 다를까?

    표절(剽竊, plagiarism)이란 한마디로 ‘저작물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글쓰기에 있어 남의 글을 마치 자기 글인 양 속이는 행위가 대표적인 표절 유형이다. 곧 원전이 따로 존재함에도 마치 자기가 최초로 창작한 것처럼 꾸미는 행위를 가리킨다. 최소한의 인용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출처 명시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저작 행위에 따르는 노고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가 바로 표절인 셈이다. 그러므로 표절은 주로 학술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윤리와 관련되는 개념으로 여겨져 왔다.

    반면에 저작권 침해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의 창작자가 정당하게 부여받은 권리를 다른 사람이 침해한 법률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이란, 특별한 요건을 갖춘 것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든 학술적이든, 혹은 예술적이든 개인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것으로서 이용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을 가리켜 ‘저작자’라고 하며, 저작자에게 주어지는 법적 권리가 바로 ‘저작권’이다. 요컨대, 저작권은 저작물의 질적 수준에 관계없이, 그리고 어떤 절차나 방식을 이행할 필요 없이 창작과 동시에 생긴다.

    또, 저작물은 저작자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원저작물로 하여 2차적저작물, 즉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등의 방법으로 재창작할 수 있으며, 여러 저작물을 선택하여 창작적으로 배열함으로써 편집저작물을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2차적저작물이나 편집저작물도 엄연한 저작물이므로 그것을 작성한 사람 역시 별개의 저작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저작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저작인격권(저작자에게 주어지는 정신적 권리)과 저작재산권(저작자에게 주어지는 재산적 권리)이 부여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합쳐서 ‘저작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표절은 다른 사람의 저작으로부터 전거(典據)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내용을 인용(引用)하거나 차용(借用)하는 행위를, 저작권 침해는 다른 사람의 저술로부터 상당한 부분을 저자의 동의 또는 이용허락 없이 임의로 자신의 저술에서 사용한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식의 확산을 위해 공정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정도를 넘는 경우라면, 설사 전거를 밝혔더라도 저자의 동의가 없었다면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표절도 출전을 밝히기만 하는 것으로 전부 방지되는 일은 아니다. 자기 이름으로 내는 보고서나 논문에서 핵심내용이나 분량의 대부분이 남의 글에서 따온 것이라면 출전을 밝히더라도 저작권 침해 또는 표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남의 글이나 생각을 베끼거나 짜깁기해서 마치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공표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문을 보면서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오늘 플라타너스 낙엽이 쓸쓸하게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문득 시상이 떠올라 「가을엽서」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만들어보았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 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낮은 곳에 / 있는지를” 쓸쓸한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 플라타너스 낙엽이 쓸쓸하게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문득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가 떠올라 읊조려보았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 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낮은 곳에 / 있는지를” 쓸쓸한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❶에서는 ‘안도현’ 시인의 작품을 버젓이 자기 글인 양 표현하고 있다. 즉, 출처 명시조차 없이 마치 자기가 창작한 시를 예시한 것처럼 꾸미고 있어서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은 모든 내용이 필자의 창작이라고 여길 것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글 전체에서 안도현 시인의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건대 시를 빼고 나면 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다 쓰면서도 누구의 작품인지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표절’이 성립하며, 동시에 전체적으로 보아 몰래 가져다 쓴 작품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안도현 시인의 저작권, 구체적으로는 저작인격권으로서의 ‘성명표시권’과 저작재산권으로서의 ‘복제권’ 등을 침해한 것이 된다.

    ❷의 경우에는 그것이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라는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표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용허락을 얻지 않고 가져다 쓴 것이라면 #1과 같은 이유로 저작권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만, 출처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저작인격권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저작재산권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가 수록된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출처: 알라딘

    나는 오늘 플라타너스 낙엽이 쓸쓸하게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문득 시상이 떠올라 「목마와 숙녀」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만들어보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가을은 그렇게 쓸쓸히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 플라타너스 낙엽이 쓸쓸하게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문득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가 떠올라 읊조려보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시 한 편을 미처 끝까지 읊조리기도 전에 쓸쓸한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❸의 경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작품을 마치 자기가 창작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표절’에 해당한다.

    다만, 박인환 시인이 1956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지났다는 점에서 저작재산권이 소멸되어 저작권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곧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 공유상태(public domain)에 있는 표현물, 저작물성이 인정되지 않는 표현물 또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가 성립할 수 없고 표절만이 문제될 수 있을 뿐”(남형두, 2009)이다.

    ❹는 앞서 살펴본 ❷와 유사한 경우에 해당하지만 위에서 살핀 것처럼 박인환 시인이 1956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저작재산권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표절’은 물론 ‘저작재산권 침해’ 또한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으로 이 시를 이용한다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맞물려 저작인격권 침해가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박인환 시인의 시집 『목마와 숙녀』
    출처: 알라딘

    저작권 보호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사회일수록 표절에 대한 사회적 규제도 엄격하며, 저작권 보호가 느슨한 사회에서 표절에 대한 규제도 느슨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작권 침해와 표절은 어쩌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절이란 흔히 지식재산에 대한 ‘도둑질’ 또는 ‘절도’로 불리지만, 사법적인 의미에서 형사문제로 다루는 관행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표절이 형사상 범죄로 간주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표절에 해당하는 행위가 때때로 저작권 침해, 불공정 경쟁, 도덕적 권리의 침해 등과 같은 명목 아래 법정에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식재산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에 맞추어 표절 또한 형사범죄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결국 연구자나 작가 등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등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실질적 유사성이 저작물의 종류 또는 그에 포함된 아이디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표절 또는 무단복제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례별로 인용 정도와 범위, 표현 방법, 그리고 전문 분야에 따라 달리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곧 문학작품 등 특정 저작물의 저작물성 및 창작성, 나아가 저작권 침해 여부 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저작물을 통해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 연구자,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와 저작권의 상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출판 편집자로 일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문헌번호운영위원장,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저작권 및 연구 윤리에 관한 자문, 강의를 맡고 있다. 2018년 ‘생활 속의 표절과 저작권’이 K-MOOC 강좌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출판실무와 저작권』, 『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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