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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이찬솔

    가구 디자인 전공, 10년차 캘리그래퍼, 전방위적 글자 디자이너의 ‘글자의지’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2년 11월 15일

    글자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이찬솔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꼴은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이고 결은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다. 꼴값은 있어도 결값은 없다. 겉과 속을 대할 때의 우리 태도가 낱말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무가지보(無價之寶)로 여긴다면 그것의 보관소는 그 사람의 안-마음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누군가의 마음 안에 보관되고 보호되고 있다면 그것에는 더는 값이 매겨지지 못한다.
    
    글꼴은 글자의 꼴이다. 영어로도 글꼴은 typeface다. 그렇다면 글자의 결은 어디에 있을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기로 한다. 글자의 결은 누구의 안에 있을까. 글자가 지닌 고유한 성품은 누군가에 의하여 이종된 것일 테고 그 모종이 본래 자리했던 곳은 누군가의 안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 그 밭의 근거지는 역시 글자를 만든 이의 마음이다.
    
    글자의 결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글자 디자이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얘기다. 값이 매겨지는 글꼴의 이면, 결의 바탕을 주목해보려는 호기심이다. 누가 이 글자를 지었나, 그 누구는 어떤 인물인가, 글자를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나, 하는 것들에 우리의 눈과 귀를 잠깐 내줘보면 어떻겠나 하는 제안이다.
    
    꼴에 값이 붙듯 결에는 숨이 잇대진다. 꼴값의 뒷면에 숨결이 있다. ‘숨결을 불어넣은 제품/작품’이라는 관용구는 ‘이 제품/작품의 값은 매우 높이 매겨졌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값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품성과 시장성 평가를 잠시 뒤로 물리고 제작자의 존재를 앞세우려는 형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발행사 윤디자인그룹은 공식 채널 『윤디자인 M』을 통해 자사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채널에서 [글자-마음 보기집]이라는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회사 소속 글자 디자이너를 인터뷰하여 매달 한 인물씩 소개하는 시리즈다. 글자 보기집이 아니라 글자-마음 보기집이다. 윤디자인그룹 안에는 어떤 결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글자를 짓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 기획 의도다.
    
    『윤디자인 M』의 [글자-마음 보기집]을 『타이포그래피 서울』에서 [꼴과 결]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여 다달이 한 편씩 옮겨보려 한다. 윤디자인그룹 소속 글자 디자이너들의 결은 그들 고유의 결인데,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그러한 결의 개별성을 드러내 보이고 축적할수록 그것들은 포개지고 뭉쳐져 ‘디자이너의 결을 궁금해 하는 마음 또는 문화’로 굳어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단 글자 디자이너의 결만이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의 결, 모든 타인의 결을 감각해보려 마음 쓰는 문화가 다져진다면 자연히 모든 분야의 꼴과 값 또한 비옥해지지 않을까.

    가구 디자인 전공생도 폰트 디자이너 될 수 있다

    저는 가구 디자인 전공입니다. 전공만 본다면 글꼴 디자인과는 거리가 꽤 있어요. 하지만, 한글을 이용해 가구를 만들다가 한글을 이용해 폰트를 만든다는 맥락이 같아서 접근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폰트는 디노마드, 마켓히읗, 윤디자인그룹 타이포아트스쿨 등 외부에 개설된 교육 과정을 통해서 우선 접했어요. 그리고 입사 후에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후 실무에 투입되었습니다.

    디자인은 감각으로 하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감각으로 하는 디자인은 오래할 수 없어요. ‘학습’하는 디자인이 더 지속력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이트, 영상 등을 통해 수시로 인풋을 많이 넣고 있는 편입니다. 표현력을 끌어올리고 싶을 때는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에서 리서치를 하고 이론은 책으로 얻는 편입니다. 폰트는 시대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 있기 때문에 폰트 역사 도서는 꼭 읽어봐야 해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 글자’ 영수증을 보며 영감을 받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쓰였던 ‘쐐기 글자(cuneiform)’라는 게 있어요. 쐐기 글자로 적힌 유적이 좀 재미있어요. ‘내 양 몇 마리를 빌려갔으니 언제 언제까지 갚을 것’이라는 내용이에요. 당대의 차용증 내지는 영수증이죠. 인류 문명 초창기에 기록된 글자의 흔적이, 그럴싸한 명언이 아니라 ‘빌려간 양을 갚으라’라는 거잖아요. 그 양을 빌려간 사람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까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쓰인 영수증을 보며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의 서사를 전할지를요. 그리고 양은 갚았을까요? 우리의 문자 생활과 타이포그래피라는 건 이렇게 개개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 글자
    출처: BBC News

    2012년부터 캘리그래퍼로 활동

    2012년부터 캘리그래퍼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폰트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단순히 글씨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감각적인 글씨를 많이 썼던 것 같은데요. 폰트를 배우면서부터는 한글의 ‘구조’를 익히기 위해 이성적이고 읽기 편한 글씨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폰트 디자이너가 꼭 손글씨를 잘 쓸 필요는 없죠. 하지만, 손글씨를 잘 쓰면 글자의 획순에 대한 감이 생기고 표현력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건 제가 폰트 디자이너이자 캘리그래퍼로서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찬솔 디자이너의 캘리그래피 모음

    캘리그래퍼이자 폰트 디자이너로서 만든 첫 글자 [빙그레 싸만코체]

    손글씨 폰트인 [빙그레 싸만코체]의 원도 글씨를 제가 직접 쓰고 폰트까지 제작했어요. 캘리그래퍼 겸 폰트 디자이너로서 완성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물론 가장 만족스러웠던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빙그레 싸만코체]는 기존 빙그레체 시리즈(빙그레체, 빙그레체Ⅱ, 빙그레 따옴체, 빙그레 메로나체)의 다섯 번째 폰트였는데요. 빙그레의 대중적 아이스크림인 붕어싸만코를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 정말 수백 장 넘는 글씨를 썼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어요.(웃음) 이 작업을 계기로 윤디자인그룹에 입사해 TDC 소속 폰트 디자이너가 되었답니다. 입사와 동시에 그야말로 밤낮없이 싸만코체 제작에 매달렸어요. 즉, 싸만코체는 제 첫 자식입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최애 프로젝트로 제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이찬솔 디자이너가 손글씨 원도 및 폰트 개발을 담당한 [빙그레 싸만코체], 2020 / 서체 보기

    홟 홟 홟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 그리고 많이 쓰이지 않는 글자. 이 두 경우가 디자인하기 가장 까다로워요. 많이 쓰이는 글자들은 말 그대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미감이 상당히 올라가 있습니다. 조금만 어색해도 눈에 불편함을 줄 수 있죠. 그래서 더 공을 들입니다.

    많이 쓰이지 않는 글자는 제작자조차도 생경해서 구조 맞추기가 어려워요. 이를테면 ‘홟’ 같은 글자가 그렇죠. 평생 살면서 이런 글자를 쓸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웃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입장인 거고요, 누군가는 쓸지도 모르잖아요. 원론적인 얘기겠지만, 그래서 폰트 디자이너는 모든 글자를 잘 만들어야 해요. 저는 ‘홟’처럼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는 글자를 좋아합니다. 뭐랄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랄까요.


    인터뷰이: 이찬솔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 소속 폰트 디자이너. 빙그레 싸만코체, 현대카드 YouandiNew KR, 〈미르M〉 게임서체 개발에 참여했다. 폰트 외에 캘리그래피, 레터링, 가구, 소품 등 글자를 활용한 다양한 장르에서 전방위적으로 작업 중이다. 이러한 활동을 스스로 ‘글자의지(LetterWollen)’라 부르고 있다. 디자이너 이찬솔의 더 많은 [글자(꼴)-마음(결) 보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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