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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방성재

    “복수 전공으로 건축을 배우다 폰트 디자이너가 됐어요. 선분으로 공간을 구획·분배하는 건축과 글자 짓기가 굉장히 비슷하더라고요.”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2년 10월 25일

    글자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방성재

    인터뷰 시리즈 [꼴과 결]

    꼴은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이고 결은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다. 꼴값은 있어도 결값은 없다. 겉과 속을 대할 때의 우리 태도가 낱말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무가지보(無價之寶)로 여긴다면 그것의 보관소는 그 사람의 안-마음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누군가의 마음 안에 보관되고 보호되고 있다면 그것에는 더는 값이 매겨지지 못한다.

    글꼴은 글자의 꼴이다. 영어로도 글꼴은 typeface다. 그렇다면 글자의 결은 어디에 있을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기로 한다. 글자의 결은 누구의 안에 있을까. 글자가 지닌 고유한 성품은 누군가에 의하여 이종된 것일 테고 그 모종이 본래 자리했던 곳은 누군가의 안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 그 밭의 근거지는 역시 글자를 만든 이의 마음이다.

    글자의 결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글자 디자이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얘기다. 값이 매겨지는 글꼴의 이면, 결의 바탕을 주목해보려는 호기심이다. 누가 이 글자를 지었나, 그 누구는 어떤 인물인가, 글자를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나, 하는 것들에 우리의 눈과 귀를 잠깐 내줘보면 어떻겠나 하는 제안이다. 꼴에 값이 붙듯 결에는 숨이 잇대진다. 꼴값의 뒷면에 숨결이 있다. ‘숨결을 불어넣은 제품/작품’이라는 관용구는 ‘이 제품/작품의 값은 매우 높이 매겨졌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값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품성과 시장성 평가를 잠시 뒤로 물리고 제작자의 존재를 앞세우려는 형용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발행사 윤디자인그룹은 공식 채널 『윤디자인 M』을 통해 자사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채널에서 [글자-마음 보기집]이라는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회사 소속 글자 디자이너를 인터뷰하여 매달 한 인물씩 소개하는 시리즈다. 글자 보기집이 아니라 글자-마음 보기집이다. 윤디자인그룹 안에는 어떤 결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글자를 짓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 기획 의도다.

    『윤디자인 M』의 [글자-마음 보기집]을 『타이포그래피 서울』에서 [꼴과 결]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여 다달이 한 편씩 옮겨보려 한다. 윤디자인그룹 소속 글자 디자이너들의 결은 그들 고유의 결인데,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그러한 결의 개별성을 드러내 보이고 축적할수록 그것들은 포개지고 뭉쳐져 ‘디자이너의 결을 궁금해 하는 마음 또는 문화’로 굳어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단 글자 디자이너의 결만이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의 결, 모든 타인의 결을 감각해보려 마음 쓰는 문화가 다져진다면 자연히 모든 분야의 꼴과 값 또한 비옥해지지 않을까.

    무수한 연결고리를 만지고 다듬는 과정, 폰트 개발

    폰트 개발을 의뢰 받으면 가장 먼저 해당 브랜드의 모든 것을 조사합니다. 어떤 가치와 문화를 추구하는지, 연관 키워드들은 무엇인지 등등. 이런 것들을 학습해 나가는 동안 막연했던 브랜드 이미지가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시안 작업을 시작합니다.

    시안 작업을 할 때는 ‘용도’를 많이 생각해요. 제목용인지 본문용인지, 게임이나 광고 등 이미지성을 많이 띄는 폰트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방향성을 정합니다. 방향성이 정해지면 짧은 문장부터 디자인을 해봅니다. 이때 만드는 글자들을 ‘시안자’라고 해요. 시안자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계속 소통하면서 점차 글자 수를 늘려갑니다. 대략 이러한 과정으로 폰트가 만들어집니다.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짧으면 3개월에서 1년, 길면 수 년이 걸리기도 해요.

    2019년 〈리니지 2M〉 전용서체 개발실의 모습
    사진 제공: 윤디자인그룹 TDC

    내가 만든 글자, 반드시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이유

    내 손으로 만든 폰트는 내 자식처럼 보여요.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료 디자이너들의 존재가 소중해요. 관점과 스타일이 저마다 다르니까 입체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어요. 내 폰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는 이들이죠. 그래서 폰트를 완성하고 나면 바로 세상에 내놓는 게 아니라, 반드시 동료들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의견을 수용하지는 않아요. 내가 설정한 디자인 전략과 부합하는 것들을 잘 판단해서 받아들입니다. ‘내 자식’이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요.(웃음)

    글자 짓기는 건축과 비슷

    대학교에서 미술 외에 복수 전공으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손으로 그린 도면이 현실 세계에서 큰 건물로 구현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거든요. 사람과 공간, 공간과 공간의 상관관계, 건축물의 동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일상의 공간들이란 정말 많은 상호작용 안에서 기능하고 존재하는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선분을 긋고 조정하며 공간을 구획·분배하는 건축의 일이 글자 짓기와 굉장히 비슷해 보였어요. 어쩌면 제가 글자를 만들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건축 공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자 만들 때 글자에서만 영감을 얻진 않는다

    글자를 만드는 디자이너라고 해서 꼭 글자에서만 창의적 영감을 얻는 것은 아니에요. 제 경우는 대학생 때 복수 전공을 했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 디자인 모티프(motif)를 찾는 게 익숙해요. 물론 폰트 개발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선 레퍼런스 글자들을 많이 찾아봅니다. 하지만 글자만 들여다보진 않아요. 미술 작품이라든지 건축물, 그래픽, 캐릭터 등등 최대한 많은 시각 자료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제 작업물에 방성재만의 디자인, 방성재다움을 입히기 위한 나름의 노력인 셈이죠.

    화려하고 재미있는 ‘폰트 행사’를 기획해보고 싶다

    글자 또는 폰트를 주제로 한 문화 행사를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미디어 아트와 그래픽 아트를 형형색색 구현한, 한마디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해보면 좋겠어요. 누구나 신나게 즐기고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참여형 전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글자와 폰트가 우리 일상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 제 목표예요.


    인터뷰이: 방성재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 소속 폰트 디자이너. 글자를 가지고 노는 중. 세종학당 전용서체, 벨리곰 전용서체,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서체 [조선100년체], 게임 〈리니지 2M〉 전용서체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라틴스터디작도’에서 활동하며, 평소 한글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놀며 다양한 디자인을 해보고 있다. 디자이너 방성재의 더 많은 [글자(꼴)-마음(결) 보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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