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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소파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의<미쳐도 괜찮아 베를린>

    아방이 한 여행은 관광 명소나 거창한 예술을 찾는 누구나 하는 평범한 여행이 아닌 '카우치 서핑'이란 방법을 택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호스트가 서퍼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소파나 매트리스를 빌려주거나 방을 내어주기도 하며 함께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글. TS 편집팀

    발행일. 2014년 11월 11일

    그들의 소파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의<미쳐도 괜찮아 베를린>

    유쾌, 위트, 낭만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이 드로잉북을 들고, 낯선 남자들의 소파를 빌려 베를린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의 이야기와 그림을 책으로 펴냈는데, <미쳐도 괜찮아 베를린>이 바로 그것이다. 아방이 한 여행은 관광 명소나 거창한 예술을 찾는 누구나 하는 평범한 여행이 아닌 ‘카우치 서핑’이란 방법을 택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호스트가 서퍼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소파나 매트리스를 빌려주거나 방을 내어주기도 하며 함께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녀는 인연이 되어준 몇몇 서퍼들에게 짜릿한 일상과 미쳐도 괜찮을 수 있는 법을 배워왔고 이 책에는 이러한 내용이 그녀의 톡톡 튀는 그림과 어우러져 있다.

    난 또 우물쭈물해야 했다. 이번엔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고 있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발들은 현관에 쌓여 있었고 피터와 친구들은 맨발이었지만 바닥엔 낙엽과 모래, 먼지들이 엉켜 있어 도대체 여기가 바깥인지 집 안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관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었더니 피터가 더 활짝 웃었다. 나에게 앉으라고 권해준 의자만 빼놓고 식탁도, 복도도 지저분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지러운 집 안 꼴에 당황해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자 손동작이 크고 친절한 필립이 눈을 찡긋했다. “더럽지? 하하하. 사실 이건 더러운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거야. 너에게 베를린의 여름을 보여줄게. 우리집 바닥엔 모래도 있고 벌레들도 있으니 아마 텐트 치고 캠핑하는 기분이 들 거야.” – 본문 59쪽, ‘베를린의 여름을 보여줄게’ 중에서

    아방은 삶의 평탄함이 지겨워진 20대 후반의 여성. 그녀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박살 내줄 무언가를 마주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부디 무사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호텔의 침대를 빌릴 돈도 있었고 세 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돈도 있었지만, 그녀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뻔뻔하지만, 불편하겠지만, 꼭 얻어 자고 싶었고 얻어먹고 싶었다. 그것도 꼭 낯선 이들의 소파에서, 당신이 만들어주는 요리로. 그래서 무작정 알지도 못하는 베를린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당신의 소파에서 재워달라는 메일을 썼고, s그리고 베를린 남자들의 소파를 전전하며 무려 한 달간 베를린을 누볐다. 모두가 위험천만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녀는 이 여정을 더 미뤄두었다가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만 같았다.

    카우치 서핑을 하는 호스트와 서퍼가 ‘베를린’에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을 할까. 아방이 만난 친구들 민, 피터, 마르코, 조, 스테판, 다빗, 아드리앙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베를린의 것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함께하자며 그녀에게 툭툭 던져주는 것들을 그녀는 즐거이 받아냈고 그것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오감을 건드렸다. 공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실이 숨어 있는 옷 가게, 모두가 즐기는 전시장, 나이 든 사람들의 동네 페스티벌, 숲에서의 일렉트로닉, 유럽 최고의 클럽 등의 풍경을 마주하면서 그녀는 가지고 있던 시간과 공간과 생활에 대한 개념이 산산이 조각남을 경험한다. 그녀의 상식은 더는 상식이 아니게 되었고, 매번 그때까지는 상식일 수 없었던 새로운 상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틀에 갇혀 있고 편견으로 가득했던 자신과 자주 마주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베를린이었다. 홍대보다 더 홍대 같고, 이상하고 또 이상해서, 결국 이상하지 않은 도시였다.

    베를린의 호스트들은 역사를 공부하거나 약학을 전공하는 학생이기도 했고 동시에 클래식과 현대음악에 조예가 깊은 뮤지션이기도 했다. 주말엔 공연도 했다. 집에서는 수준급으로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였고, 공기의 흐름과 밤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자였다. 그들의 하루만 25시간일 리는 없는데 그들은 다재다능했고 자유분방했다. 베를린과 그들의 소파에서 아침을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보다 더 좋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고, 보다 더 잘 미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엔 아방의 작품이 총 50여 장 들어 있다. 그녀가 놓치지 않고 포착해 그려놓은 여행의 장면으로 우리는 그녀가 본 베를린을 상상함과 동시에 그녀의 모습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이에 더해 7명의 카우치 주인들의 인상기도 그려 넣어 그들의 얼굴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도 한 것. 러프한 선과 거침없는 색감에 매혹되는 것일까. 아방의 그림에 머물고 싶음과 동시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정을 이어나가듯 이 책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게 하는 작가의 매력이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통통 튀고 있다. 떠나고, 사람을 만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한 자들에게 아방의 그림이 한 편의 낭만과 위트와 용기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싶다. 유쾌한 글과 재치 있고 낭만적인 그림은 무언가를 망설이는 모두에게 그래도 한번쯤은 좋아하는 것에 미쳐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방이 그랬던 것처럼 일탈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도전’이 필요한 자들에게 자극제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책 정보

    미쳐도 괜찮아 베를린

    글·그림·사진: 아방

    출판사: 문학동네출판그룹, 달

    출간일: 2014.9.24.

    가격: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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