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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귀한 천국, 몽생미셸 수도원

    몽생미셸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그림자의 허공과도 같은 성인의 모습처럼 부유하듯 존재하며 대양과 하늘의 광대하고도 신성한 순결의 아침처럼 닫혀있는 자신을 연다.


    글. 김개천

    발행일. 2013년 06월 26일

    고귀한 천국, 몽생미셸 수도원

    중세 유럽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암흑의 시기라 할 수 있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중해의 패권은 이슬람 제국에 있었고 무역보다는 농사에 의존하였다. 맨손으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고 빵은 없고 죽으로 어쩌다 끼니를 때웠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신앙의 시대였다. 농민들은 물론 영주와 기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힘겨운 삶을 고무하는 역할을 했고, 하늘의 고귀한 빛을 향해 고행의 순례를 떠나게 하였다. 그나마 글을 아는 수도원의 일부 수사들에 의해 서양 문명은 보존될 수 있었으며 신에 대한 회의와 증명을 통해 신앙과 이성이 결합한, 대중화되고 철학화된 종교로 나아가게 된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11세기를 열며 발전된 스콜라 철학으로 그리스도교는 사상적으로도 장중한 색채를 더했으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초기 기독교의 사상이 아닌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검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철학은 서양 문명의 진보를 내딛게 하는 원천이 된다. 그 중심에 수도원이 있었다.

    태곳적부터 장대한 자연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는 수도원은 순례자들을 하늘 높은 곳으로 인도한다.(ⓒ컬처그라퍼)

    귀족적 검박함의 공간

    보통의 수도원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면 몽생미셸은 12세기 이후에 번성한 고딕의 양식이 함께 결합한 중세 문화의 산물이다. 중세를 발전시킨 스콜라 철학은 인간을 정신적인 생명체로 보아 죽어버릴 세상의 육체를 사용하는 이성적인 영혼으로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신비주의적 추세를 유도하였고 수도사들이 정신적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 또한 삶의 영적인 부분이 반영된 인간 정신의 산물이었고 영혼은 높은 곳으로 열려있었다. 장식은 엄격히 통제되고 인간적 욕망은 사라지며 모든 관심이 침묵으로 열리는 수도원에서 지고한 정신의 조형성만이 환기력을 지닌 신성함으로 기능한다.

    이곳의 도서관은 그리스와 라틴어로 된 신의 서적들만이 아닌 동방에서 유입된 사상서와 세속 학문의 많은 개론서로 가득 차 있었다. 지성을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일부 중세의 지식인들과 그 내용에는 별 관심 없이 단지 공들여 베끼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대다수 평범한 수도사들로 섞여 있었던 그들은 단순하고 치장되지 않은 검박한 옷을 입었으나 정신은 신성함을 향했다. 우아한 둥근 천장 아래 두꺼운 벽에 드리운 고요한 빛의 광채는 아무 장식 없는 돌들에 스며들었고, 농사와 필사라는 일상의 수고는 귀족적 검박함이라는 특유의 품위를 풍기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어우러진다.

     [좌] 수도원의 식당(출처: 수도원 페이스북)과 [우] 홀 (ⓒ컬처그라퍼), 귀족적 검박함의 품위로 신성함을 감싸는 수도원의 내부 공간

    고귀한 천국의 정원

    신석기 시대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신들의 제사 장소로 쓰이며 죽은 자의 섬으로 불리던 노르망디 바닷가의 몽톰브(Mont-Tombe) 무덤 산은 물과 모래의 회색 늪지대 저편의 단단한 대지로부터 치솟은 성운 같은 삼각형의 물체로 하늘에 도달할 듯 거대한 실루엣을 이룬다. 마치 태곳적부터 꾸어온 꿈인 양 장대한 기억을 품으며 검고 깊은 통일 속으로 드러내고 사라진다.

     [좌] 예배당: 단호한 엄격함으로 일관한 수직의 절제된 공간은 속기를 떠난 신성한 풍모를 드러낸다. (ⓒ컬처그라퍼)
    [우] 절벽 위 성전: 좁은 암벽지형이 빚어낸 불규칙적인 건축은 자유로운 무위의 자연이 되어 하늘과 소통한다. (ⓒ컬처그라퍼)

    유럽의 수도회 운동을 주도했던 베네딕트 수도회에 의해 지어진 몽생미셸 수도원은 좁은 암벽의 지형이 만든 불규칙적인 구도로 마치 신이 빚어낸 듯 자유로운 건축이 되었고, 형태에 연연치 않는 신성함으로 신과 소통하는 무위의 경지를 보는듯한 건축이 되었다. 이 깊은 묵묵함은 자연과 하나로 결합하여 영적인 요소가 건축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몽생미셸 전체를 신성함으로 감싼다. 12세기 들어 당시 시대사조에 발맞춰서 고딕양식의 성가대석을 추가로 건축하였으나 보통의 화려한 고딕양식들과 달리 군더더기 하나 없이 수도원은 단호한 엄격함으로 일관한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듯한 대지와 섞여 드러나는 절제된 생생함은 속기를 떠나 성전다운 풍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수도자들의 성경 낭독 소리는 신성한 공간 안에서 공명하듯 울려 퍼진다.

    이곳에서 신성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옥상의 공중정원인 수도사들의 정원이다.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각의 정원은 인간의 욕망을 느낄 수 없는 다른 공간과 달리 ‘너희가 고귀하게 살면 천국에 도달하리라’는 듯 욕망을 거세당하고 기다림을 바친 수도사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하는 천국의 공간인 듯 느껴진다. 정원에 핀 장미꽃들과 함께 섬세하게 투조된 여린 꽃으로 조각된 이중열주의 회랑은 마치 중세 때 유행했던 다성 음악 같은 리듬감을 주며 가는 기둥들 사이로 지상이나 지상이 아닌 것 같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한다. 서쪽 회랑 면에서는 닫힌 다른 회랑과 달리 희미한 듯 사라지는 북해의 끝없는 갯벌이 펼쳐진다. 진득진득한 모래가 구불구불한 물길과 섞여 황량한 듯 장엄하게 흐르는 회색 갯벌 해안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아득하나 한눈에 들어온다. 일찍이 하늘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집어삼켰던 악마의 바다이다.

     옥상 정원과 회랑: 섬세하고 가는 이중 열주들로 둘러싸인 하늘의 중정은 지상이나 지상이 아닌 천국의 공간인 듯 느껴진다. (ⓒ컬처그라퍼)

    신성한 순결의 아침

    중세의 특징이었던 순례 행렬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 로마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묘지, 그리고 대천사장 미카엘의 성전인 몽생미셸로 이어졌다. 이곳은 천사장의 영대와 발자국이 찍힌 대리석판을 성물로 모신 후 순례의 절정으로 이끄는 왕국으로 탄생한다. 몽생미셸의 순례길은 ‘유언부터 하고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바닷물이나 모래 늪,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와 강도들도 성찰과 회개를 통해 미카엘의 은총을 구하려 이곳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물결을 막지 못하였다. 교회는 객사한 신자들의 미사를 올려주기 바빴고, 좁은 길에 늘어서 성업 중이던 호텔과 상가는 붐비는 순례객들로 속세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몽샐미셸의 모습 (ⓒ컬처그라퍼)  

    몽생미셸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그림자의 허공과도 같은 성인의 모습처럼 부유하듯 존재하며 대양과 하늘의 광대하고도 신성한 순결의 아침처럼 닫혀있는 자신을 연다. 한없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그 어떤 수도원보다 속세와 동떨어진 신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요하게 천국을 품는다. 칼을 들고 몽생미셸의 끝에 서 있는 대천사장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힘든 숙명을 어루만져 주는 듯 미묘한 날갯짓을 하고 장밋빛 감도는 하늘 아래 밤의 색깔로 있다.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교수이며 건축가와 디자이너이다.
    동양사상과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 등의 저서가 있다.
    대표작으로는 강하미술관, 한칸집, 카트러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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